동남아에서 만난 사람들

동남아에서 만난 사람들

첫 해외 여행인 2014년 1월부터 글을 작성하는 2018년 9월의 지금까지 총 6개의 동남아 국가를 여행했다.

나는 그곳에서 사람을 만났으며 다양한 방식의 추억을 선물받았다. 선물과도 같은 추억을 기록해보려한다.

주제와 분량에 맞게 작성하려다보니 몇몇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빠졌다. 이 아쉬움을 다른 글에서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아가씨! 아가씨!

생에 처음 딛어보는 내 나라 대한민국이 아닌 낯선 땅.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한가운데 나는 서 있었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간단하게 점심을 먹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카페 가는 길을 묻기로 했다.

한 아주머니가 까맣고 긴 머리를 위로 질끈 묶고 사람 많은 거리를 서성이고 계셨다.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가게 홍보를 하시는 분이었다. 주변을 잘 알고 계실 것이 확실했다. 길을 묻자 친절하게도 본인을 따라오라고 하셨다. 전단지를 안 나누어주고 자리 이동해도 괜찮은지 걱정하며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아주머니를 만난 곳은 시장 근처여서 카페가 있는 거리로 나가려면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야 했다. 가는 동안 아주머니는 앞장서서 걸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단을 돌리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자연스레 귀를 기울였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는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Girl! Girl!”을 외치면서 가고 있었고, 나는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고 있었던 거다. 나는 웃음이 나왔고, 그게 아주머니의 친절함 때문인지 상황의 황당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할 생각 있으면 연락 줘

그렇게 일주일 남짓 말레이시아를 여행했을 때인가. 핸드폰은 여행 첫날 도둑맞아 없이 지낸 지 오래였다. 카우치 서핑 호스트 정보나 비행기 정보, 내 여권 정보, 몇몇 도시의 지도가 기록되어 있는 여행 공책도 잃어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카우치 서핑 호스트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은 큰 문제였다. 내게 남은 건 여행 공책을 pdf 파일로 저장해둔 USB가 전부였다.

여행 공책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이 확실시된 순간 큰 카페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누군가 한 명쯤은 노트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꽤 크고 넓은 카페를 찾을 수 있었고, 노트북을 이용해 일하는 중으로 보이는 한 남성분을 찾았다.

사정을 설명하고 잠시 노트북을 빌렸다. USB를 연결해 pdf 파일 보며 필요한 정보를 찾아 적는 동안 우리는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은 싱가포르 회사에서 일하는 싱가포르 사람이었고, 나와 같은 직종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공통점이 단숨에 우리를 친해지게 만들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그분은 외국에서 일해 볼 생각이 있으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꼭 연락하겠노라며 다짐했건만 칠칠치 못함은 어디 가지 않는다. 명함을 잃어버렸다. 몇 년 뒤에 싱가포르 회사의 복지를 알게 된 후에 다시 한번 후회했다.

 

물도 싫고, 물고기도 싫어.

나는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매우 싫어한다. 급식이나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생선이 반찬으로 나오면 눈을 꼭 휴지로 가려야 했다. 붕어빵도 모양을 가려야지 먹을 수 있다.

지난 추석 연휴에 맞추어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여행을 계획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카우치 서핑 호스트는 윌리였다. 윌리는 나에게 인도네시아에 오면 스노클링 하는 게 어떻냐며 제안을 했다. 나는 물도 싫고, 물고기도 싫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일리는 참 끈질긴 친구였다. 윌리의 끈질김이 내 승낙을 끌어냈다.

자카르타에서 배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 보면 쓰레기가 뭉쳐있는 바다가 보이다가, 청록색 바다 위로 오랜 세월이 묻어나오는 배와 뱃사공이 보이다가 좀 더 나아가면 하늘과 하나가 된 바다만이 남았을 즘 하라판 섬에 도착한다.

하라판 섬에 도착해서 윌리가 예약한 프라이빗 배를 타고 다시 20분을 들어가고 나서야 나와 윌리, 윌리의 두 동생은 넓고 넓은 바닷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배의 사다리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그 순간의 공포심만 이기면 저 멀리 보이는 깊은 바닥도, 수십, 수백 개의 물고기 눈도, 그 속의 나도 살아있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이 바다 어딘가에 살고 있을 용왕을 질투하며 나의 짧은 두 시간의 여정을 끝냈다.

그 후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물도 싫고, 물고기도 싫지만 스노쿨링은 좋아.”

 

남편 어떻게 만났어요?

인도네시아의 족자카르타는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왕과 왕비가 있고, 공주들이 있다. 높은 건물도 없고,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 골목이 예전과 같이 생기를 내뿜는다. 족자카르타에서 개미가 둥둥 떠다니는 국을 먹기도 했고, 그릇이 아닌 잎 위에 올려진 음식을 수저가 아닌 손으로 먹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디니 언니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고시원 같은 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첫날 그곳에서 묵었다. 그 고시원에 살고 있는 디니 언니의 이모와 어느 신혼부부, 중년의 아주머니가 다른 생김새의 나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내 방을 순서대로 찾아왔다.

그중 신혼부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남편은 낯을 가리는지 멀리서 인사만 하며 딱히 말을 나눠보진 못했지만, 아내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나와 대화하는 게 썩 재미있는지 짧은 기간 여러 번 내 방문을 두들겼다. 알고 보니 나와 한두 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언니였고, 임신 막달의 임산부였다. 난생처음 사람의 배 속에 있는 아이의 발길질을 느껴보았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언니와 아는 인도네시아 단어라곤 10개는 채 될까 싶은 나는 깊이 있는 언어로 대화를 하긴 어려웠다. 디니 언니가 왔을 때 그 부부가 어떻게 만났는지 물어봐달라고 했고, 대답을 들었을 때 난 적잖이 놀랐다. 둘은 어플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다고 했다.

그 순간 100년 전 과거에서 100년 후 미래로 단숨에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을 받았따. 곧바로 내가 느낀 아이러니는 자각하지 못했던 편견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착한 사기꾼

베트남은 가장 짧게 머물렀던 남의 나라이지만 가장 많은 사기꾼을 만났다. 1+1 행사를 하는 물을 샀는데, 영수증을 숨기며 정가를 요구하다가 행사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 그러냐며 돈과 영수증을 돌려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음식을 주문했는데 음식을 줄 때 메뉴판이 잘못되었다며 돈을 더 달라고 하다가 주문 전에 말하든가 메뉴판을 수정하라고 말하니 웃으면서 그냥 넘어가는 야시장 요리사. 대체로 ‘한 놈만 걸려라.’ 같은 일단 찔러보기식의 사기가 많았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 난 호찌민의 시내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가 내게 다가왔다. 본인이 여행 가이드라고 소개하며 어딜 가고 있냐고 물었다. 난 가이드 받을 생각은 없고 우체국에 가고 싶은데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우체국은 멀어서 걸어서 못 간다고 오토바이를 타라고 했다. 나는 가깝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됐다고 거절을 하며 갈 길을 갔다.

한 블록쯤 갔을 때 그 사람이 다시 오더니 친해지고 싶다며 공짜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하기도 했고, 피해가 크지 않다면 여행에서의 작은 사기는 하나의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가이드를 부탁했다. 유명한 관광지 서너 군데를 들렸고,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을 추천받아 그동안 베트남에서 먹었던 모든 음식보다 맛있었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강을 보여주겠다며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강가로 갔다. 그러고선 본색을 드러냈다. 자기가 말한 공짜는 첫 번째 관광지만 말했던 거고 나머지 것은 돈을 내라고 말했다. 서툰 영어를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나는 돈을 줄 수 없다며 받아쳤지만, 그는 끈질겼다. 그래서 숙소에 가서 ‘내 친구들’에게 돈을 받아서 줄 테니 ‘핸드폰 번호’를 내놓으라고 하니 대답도 하지 않고 줄행랑쳤다.

 

그 덕에 나는 시내를 벗어난 한적한 동네를 거닐 기회를 얻었다. 강 주변에 낚시를 하기 위해 모여든 아저씨들 사이에서 구경하며 놀다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서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냐고 물었다. 금세 친해진 아저씨들은 아쉽게도 몸짓, 발짓을 제외하곤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내 말을 추측하기 시작한 아저씨들이 다른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를 불러들이고, 순식간에 내 주위를 열댓 명의 주민들이 둘러쌌다. 그들은 택시를 타라고 했지만, 돈도 아끼고 싶고 택시보다는 버스가 현지의 문화를 체험하기에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버스를 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들에게 와전되어 들어가서 난 돈이 없어서 택시를 탈 수 없는 이방인이 되어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자기 아들이라며 이십 대 초반의 한 아이를 데려왔다.

그는 그 나이대에 맞게 구글 번역기를 나에게 쥐여주었다. 다시 버스를 어디에서 탈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본인이 태워다주겠다고 말했다. 덕분에 나는 편하고 빠르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본의 아니게 돈 없는 척을 하게 된 내가 사기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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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6 comments
  • 신조신
    응답

    편의점에서도 사기를 치다니… 클라스;;

    • ye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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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생각 안 하고 샀으면 사기 당한지도 몰랐을 거 같아요…!

  • 일과삶
    응답

    ㅎㅎ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며 여행하는 모습이 부럽네요

    • yeony
      응답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행글 열심히 올릴 예정입니다~

  • mynelson
    응답

    역시 대가 없는 공짜는 없는 것 같아요!
    사기꾼도 많지만 도와주시고 태워다주시는
    좋은 분들도 있었다니 다행이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할게요^^

    • yeony
      응답

      감사합니다~
      넵 착하고 친절하신 분들도 많이 겪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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