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앞두고

나의 퇴사

뭐가 그리 어려웠던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밖으로 세어나가 다시 내 귀로 들어왔었다. 뭐 그리 좋은 기억이 있다고, 아름답고 깔끔한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이리저리 거짓말을 보태가며 나의 퇴사에 그들에게 맞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왜 그동안의 불만을 토해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얼른 다 내려놓고 싶었던 듯하다. 떨리고 떨려서 한 시간이라도 늦게 말하려 노력하면서 말이다.

퇴사를 말하기 전에도, 퇴사를 말하고 나서도, 회사 마지막 날에도, 무직이 된 첫 번째 날에도 나는 웃지 않았다.

 

나의 또 다른 퇴사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퇴사를 말할지 계획을 세웠다. 하루빨리 말하고 싶었다. 퇴사 계획이 현실적인 시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눈치를 주는 회사도 아니고, 나도 눈치를 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가 일에 집중하지 않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았다. 퇴사 계획을 밝히면 집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참 미련한 생각이다.

나의 회사 통보 계획은 총 세 단계였고, 그 첫 단계를 위해 친한 직원 두 명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점심을 같이 먹자고 운을 띄웠다. 한 분이 안 되어서 나머지 한 분과만 식사를 같이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계획이 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 먹으러 같이 걸어가는 약 10분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는 온통 퇴사로 가득 차 있었다. 직원분은 자주가는 쇼핑몰 할인이 시작되어 수강 신청하듯 쇼핑몰 홈페이지에 들어가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식당에 마주 앉아서도 나의 머릿속은 퇴사로 가득하였지만 입에선 다른 말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나의 첫 번째 퇴사가 잠깐 생각날 정도로 가볍게 떨리기까지 했다.

 

퇴사를 말하다.

머릿속에서 ‘지금인가?! 지금 말할까?!’를 한 열 번인가 외쳤을 때, 드디어 입에서도 튀어나왔다. 내 앞의 직원은 눈이 커지고 손으로 입을 막은 채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퇴사에 관한 생각이 크고 오래되어서 다른 사람들도 내가 퇴사할 수도 있다고 대충 생각은 하고 있었을 거라 짐작했었다. 생각지 못한 반응에 나까지 어리둥절했다. 본인의 퇴사를 상상하느라 남들이 퇴사할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누군가 나보다 먼저 말할까 봐 두근두근했었는데.

난 오늘 함께 식사하지 못한 다른 분에게는 카톡으로 말해야겠다고 말했더니 반대했다. 내 친구에게 물었을 때도 좋지 않은 방법 같다고 했다. 웃기지만 내 퇴사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나 싶어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다양한 반응

다음 날 내 퇴사를 카카오 채팅방의 또 다른 분에게 말할 기회가 짧은 시간이지만 생겼다. 점심을 같이 먹었던 직원이 옆에서 얼른 말하라는 신호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 배를 누르면 말하는 곰 인형처럼 퇴사를 말했다. 이번에도 생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진짜라고 몇 번 말하고 계획을 전하니 그제야 놀라며 믿기 시작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다음에 길게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헤어졌다.

2단계 계획은 대리님께 말씀드리기. 프로젝트의 같은 부분을 분담하고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최종 단계인 이사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말씀드리는 계획으로 정했다. 대리님께 카페 가자고 메시지 보내니 답장이 왔다. ‘헐.’

대리님께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렸다.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고. 대리님도 여행으로 인한 퇴사를 몇 번이고 다짐했다가 가라앉히고 다음을 기약하고 계신 상태였다. 대리님은 워낙 티가 나서 잘 알고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여행과 회사. 이 두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이사님

마지막으로 이사님께 말씀드리기 위해 메시지를 보낼 때 살짝 망설여졌다. 이사님께 말씀드리는 순간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되돌릴 일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고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눌렀다. 금요일 오후 2시께였고, 그날 답장은 오지 않았다…

월요일. 출근을 준비하는 중에 오전에 면담이 잡혔다는 메일이 왔다. 회사에 도착해 회의실에 먼저 들어가 바쁜 이사님을 기다렸다. 이사님이 회의실에 들어오실 때 핸드폰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핸드폰을 보지 않고 기다렸다. 짧게 일이 분 정도 기다리니 한 손에 노트를 들고 이사님이 들어오셨다. 지금까지는 다른 동료들한테 말할 때는 퇴사한다는 직접적인 말로 퇴사 의사를 밝혔는데, 이번엔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는 말로 우회했다.

간단하게 어디로, 얼마나 갈 것인지를 물어보시더니 밥 먹으며 대화를 하자고 제안하셨다. 밥을 먹고 카페를 갔다. 세 시간 동안 어학연수 선배인 이사님께 여러 조언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퇴사에 관련한 이야기는 내가 정확히 언제가 마지막 날이 될지 여쭤본 것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신나서 떠들었지만, 최근에 일에 집중하지 못한 죄책감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놓고 뭐라고 하지 않으실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연수 다녀와서 다니는 회사에선 잘하라’, 혹은 ‘열심히 살아라’ 등 조언으로 포장된 질책을 하실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사님은 참 멋있으셨다. 짧게 가면 휴직계를 쓰고 갈 수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안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 짧은 언급으로 ‘그동안 수고했다.’라며 나를 진심으로 토닥여주셨다. 말씀하시면서 업무에 관한 조언보다 인생 선배로서의 본인의 의견을 말씀해주셨다. 그러고 보면 이사님은 항상 말과 행동이 일치하시는 분이었다. 수평적인 회사 문화를 말하면서 그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이사님이 내가 겪은 사람 중에 유일했다. 직장 상사로가 아닌 친구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싶다. 상사로서도 완벽했던 사람이지만 직장 상사이기에 내가 솔직하지 못했고, 다가갈 노력을 하지 않았었다는 게 후회되었다.

 

비로소

회사를 그만둘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회사를 알게 되었다. 시시콜콜한 회사 이야기들, 과거의 오해들, 동료들의 이야기 등. 회사의 일부였을 땐 적당 선을 지키며 크게 다가가지 않으려 했다.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도 했지만, 전 회사에서 겪고 느낀 바로 생긴 방어 기질이었다. 굳이 친구가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적당히만 했다.

일부에서 떨어져 나올 준비를 시작하니 원래 자리하던 곳과 그 주변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그 자리엔 내가 쳐둔 높고 견고한 벽이 보였다. 퇴사를 말하면서야 비로소 허물기 시작했다. 적당 선이고 방어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벽의 이름은 기우더라. 기우는 기회를 앗아가 후회를 남기곤 한다.

 

나의 퇴사들

언젠가 다시 회사를 입사한다면 이만큼 좋은 문화를 가진 회사, 팀을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첫 번째 회사는 반대였다. 어느 회사보다도 질 나쁜 문화였다. 그만두고 시간이 지나서야 그 회사는 나를 갉아먹고 있었단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퇴사를 맞이하는 아쉬움이 지금보다 그때가 더 컸다. 지금은 처음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새로운 시작을 앞두어서 그런 것인지, 오랜 계획 끝의 퇴사여서 그런지 알 수 없다. 다시 또 몇 년이 지나면 나는 이 퇴사를 어떻게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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