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35 필리핀] 애증의 리잘 공원

잠에서 중간에 깼다. 오전 7시쯤이었다. 다시 잠들었다. 다시 깼다. 피곤해서 눈이 잘 안 떠지기에 한 삼십 분쯤 지났나 했다. 시계를 보니 11시 40분이었다.

 

일어날 필요성을 느껴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사실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깬 쪽이 더 맞긴 하다. 거실로 나가니 아폴이 나를 웃기기 위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말했다. 아폴은 지금 엘리를 만나러 나간다고 내가 준비되면 나와서 리잘 공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오늘은 수요일, 빨래방에서 무료로 세제를 제공하는 날이기 때문에 우선 빨래를 하러 가기로 했다. 저녁에는 바기오 SLU 대학에서 개교기념일 축제로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과 유명한 밴드가 온다고 해서 구경을 가기로 했다.

 

밥을 먹고, 주섬주섬 빨래를 챙기는데,  지난주에 오카이 오카이에서 산 중고 옷까지 포함되어 매우 무거웠다. 다행히 지프니를 바로 탔다. 리잘 공원이 보이고 나는 내렸다. 아폴에게 도착을 했다고 연락하고 오랜만에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기다렸다.

 

10분, 20분. 오랜만에 느끼는 뜨거움이라 행복하게 즐기고 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다. 잠바를 벗고 다시 10분, 20분. 아폴과 엘리에게 각각 어디냐고 연락이 왔다. 나는 리잘 공원 동상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는 리잘 공원에는 동상이 많다고 어느 동상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묘해졌다.

 

리잘 공원은 작은 규모의 공원이다. 큰 동상을 중심으로 벤치만 몇 개 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아폴에게도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리잘 공원 앞이지만, 이젠 더는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신 주변에 보이는 큰 주유소 이름을 댔다.

 

엘리와 아폴은 각각 웃으며 그냥 거기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10분 뒤쯤 엘리가 내게 왔다. 나는 한 시간쯤 내가 리잘 공원이라고 생각했던 곳 앞에 앉아 기다렸고, 엘리는 그동안 나를 진짜 리잘 공원에서 찾아 헤맸던 거다. 내가 있던 곳은 이그롯 공원이었다. 알고 보니 리잘 공원과 이그롯 공원은 모두 번함 공원의 일부일 뿐이었다.

 

날 보자마자 (엘리 기준) 미친듯한 더위에 찾아 헤멤을 토로함과 동시에 비웃는 엘리와 함께 빨래를 하러 갔다. 아폴은 파블로와 하비와 있다고 했다. 빨래를 기다리면서 어제 갔던 영화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카메라 배터리를 맡겨야 했고, 화장실이 안에 있고, 간식도 안에서 팔고,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신기했다고 이야기했다. 엘리는 당연한 거라고 했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건 사기의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영화관은 지정석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빅마마가 내게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만약에 영화를 더 보고 싶다면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 된다고 했다. 한 관에선 같은 영화만 반복해서 틀어주는 듯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시도해봐야겠다. 최근 할로윈데이에는 이벤트로 연달아 4편의 공포영화를 보여줬다고도 했다. 하나는 한국 공포 영화였는데 별로 재미없었다고도 말했다.

 

빨래를 하고, 건조를 하고, 잘 갠 후에 가방에 도로 넣었다. 무거워서 나는 들 수 없었고, 엘리가 대신 들어줬다. 나는 엘리의 가방을 맸다. 빅마마는 집에 들러 무거운 짐을 두고 가라고 말했었지만 엘리는 SM몰에 짐을 맡길 수 있다고 해서 바로 SM몰로 향했다.

 

짐을 두고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잠시 아폴과 엘리가 자리를 비웠을 때, 파블로와 하비는 영어로 나와 대화를 나눴다. 드론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8만 원짜리 드론이 판다는 아주 짧은 이야기만 나눴다.

 

짧은 만남을 끝내고 지프니 정류장으로 가는데 이번에는 짐을 내가 들고 갔다. 드는데 어깨에 피가 안 통해서 엘리에게 같이 들어줄 수 있냐고 부탁해서 같이 들고 갔다. 이번엔 피는 통하는데 눈앞이 흔들리고 뇌에 피가 안 통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결국 하비가 들어줬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오늘도 새벽까지 빅마마와 수다를 했다. 빅마마는 생각이 너무 부정적이고 나는 너무 긍정적이다. 우린 대화를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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